며칠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이상한 부탁이 있었다. 경찰 드라마에서 자주 본 적이 있는 police line-up에 서달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범인을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나 목격자가 거울로 위장한 유리 뒤에서 방안에 일렬로 서있는 7-8명 중 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명하는 절차에 참여해달라는 요구였다. 범인으로 추정된 사람이 한국인이고 필자가 그 사람과 키, 체격, 체중이 비슷하다 하여 경찰관이 다짜고짜 요구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다. 혹 범인으로 지적이라도 받게 되면 상당히 귀찮게 될 것이고 어차피 필자 같은 사람은 중국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마에 ‘한국인’이라고 쓰여 있기 전에는 한국인으로 안 볼 것이 뻔할 터니 경찰도 굳이 한국 사람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스스로 자문한 한가지 … ‘과연 필자의 인상은 얼마나 범행자와 비슷할까?’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 누구나 범죄 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아니라고 호언장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몇 해 전 NSW 대법원 판사가 자신의 범행이 적발된 이후 고민 끝에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권위와 지혜, 인간미가 넘치는 글과 판결들을 내렸던 뛰어난 지성인이었었다. 그러나 그의 인품과 인격으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결점이 있었다. 동양인들에게는 정직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듣는다. 한국이민사회에서도 가장 큰 취약점을 들라면 교민 간에 일어나는 사기행각이라 할 수 있다. 말이 사기지 실상은 가깝고, 철석같이 믿던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받지 못하는 상황들이다. 불행하게도 사기란 주로 (달콤한) 말로 성사되는 일이라 한국인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필자는 한국인에게 사기당한 호주 백인을 알지 못한다. 의사소통에 전전긍긍하는 차에 영어로 사기 치기란 여간한 ‘영어 구사력’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끔직한 표현이 있다. 요사이 서울이나 시드니 같은 도시에서 도끼질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도끼에 발등 찍히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현대사회 안에서의 ‘피해’는 모두 금전적 형태를 띠고 있다. 알고 있듯이 돈은 ‘앉아 주고 서서 받는다’. 그런데 호주 사회에서 돈을 서서 주고 앉아서 받아 가는 이들이 있다. 가장 돈이 많은 은행들이다. 돈을 빌려주겠다고 아우성치며 호의를 보이다 냉정하게 받아 가는 조직들인데 모든 은행은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는 일이 없다. 호주에서 문 닫은 은행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라는 우스갯소리를 사업 운영 방침으로 삼는 곳이 바로 은행들이다. 은행 직원이던, 아버지던 집문서를 담보로 받기 전에는 융자가 불가능하다.
완벽한 치료보다 방지가 낫다. 확실한 담보 없는 융자는 반 포기와 비슷하다. 그리고 담보는 부동산보다 확실한 것이 없다. 물론 액수에 따라 지방법원 ($60,000이하)이나 고등법원($750,000이하), 대법원에서 소송을 걸어 돌려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일단 법률 비용이 만만치 않고 호주에서는 민사소송을 이긴다 하더라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감옥으로 보내지 않는다. 불편하게 할 수는 있다. 개인 파산을 시킬 수 있으며 할부로 갚아 나가도록 형편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설령 변호사 입회하에 돈이 손을 건너간들 담보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많은 분들이 변호사 앞에서 종이 한 장에 서약이나 영수증을 받으면 큰 효력이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는데 큰 오산이다.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신학자이며 목사인 Eugene H Peterson은 약간의 일반 지식을 갖춘 사람이 의사, 변호사, 목사와 같이 소위 ‘품위 있는’ 직종의 전문인 행세하면서 오랜 사기행각을 벌일 수는 있지만 반면에 Plumber (배관공)나 Butcher (정육점 주인) 등 소위 ‘블루칼라’ 행색은 20초 이상 못 가서 발각 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감이 쉽게 가는 말이다. 많은 소위 ‘사기꾼’들은 전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거라 예상된다. 크지 않은 시드니 한인사회에서도 자취를 감추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당연히 찾지 못하면 받아낼 수도 없다.
믿어지지 않게 좋게 여겨지는 일은 현실성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면책공고 Disclaimer – 위의 내용은 일반적인 내용이므로 위와 관련된 구체적 법적문제는 변호사의 자문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김성호 변호사 mail@kimlawyers.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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